김상근 지음, 21세기북스
310쪽, 1만8000원
“권력을 유지하려는 군주는 선하기만 해도 안 되고, 악인이 되는 법도 알아야 한다.” “(군주는)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낫다.”
지극히 현실적이긴 하지만 어지간히 얼굴이 두껍지 않고는 리더십 이론가가 할 말은 아니다.
“대중이란 머리를 쓰다듬거나 없애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소한 모욕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하지만, 너무나 엄청난 모욕에 대해서는 감히 보복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에게 해를 가할 때는 보복의 우려가 없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대중에 대한 이런 멸시에 이르면 보통사람으로선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예리하지만 냉정한 이 발언의 주인공인 마키아벨리가 좋은 소리를 못 듣는 게 당연하다.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를 무대로 활약했던 정치가이자 정치학의 고전 『군주론』의 저자였던 그는 사후 40년쯤 지나서부터 권모술수의 대명사로 이해돼왔다. 이상적인 도덕주의자들로부터 ‘공공의 적’으로 꼽힌 것이다.
그런데 아니란다. 마키아벨리는 지극히 현실적인 지도자론을 펼친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그 자신은 강자의 주구(走狗)가 아니라 신산스런 삶을 산 약자였기에 그 같은 악평을 들을 까닭이 없단다.
‘마키아벨리 제대로 보기’라 할 이 책을 쓴 김상근 교수의 주장이다. 사실 마키아벨리의 악명은 오해라는 사실은 어지간한 이들에겐 구문(舊聞)이다. 한데 지은이는 치밀한 자료조사와 현장답사를 바탕으로 마키아벨리의 삶과 사상을 온전히 보여주기에 설득력이 상당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정되는 20대 후반,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흥망을 지켜보며 그 실체를 숙고하게 됐다. 프랑스 군대에 항복사절로 갔던 산 마르코 수도원장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피렌체를 구해낸 활약으로 신권정치의 수장으로 떠올랐다가 4년 만에 시민의 변덕으로 ‘불의 심판’을 받은 일이다. ‘허영의 화형식’을 여는 등 위세를 떨치던 사보나롤라의 몰락을 목도하면서 마키아벨리는 왜 사람은 권력을 잡으면 변하는지, 대중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는지, 사보나롤라처럼 되지 않으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등을 고민했으리라고 지은이는 추측한다.
리비우스의 『로마사』 등 고전에서 답을 구한 마키아벨리는 29세에 피렌체 행정부의 제2서기장에 선출됐다. 세금 체납자의 아들로 변변한 학력도 없고 법률가도 아니었던 그의 출세 경위는 상세히 밝혀지진 않았다. 지은이는 그의 저서 『로마사 논고』’의 “나는 비천하게 태어난 자가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출세한 예를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 했다. 모략만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을 나는 확고하게 믿고 있다”는 구절에서 찾는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각광받던 마키아벨리가 메디치 가문의 재집권으로 공직에서 떨려나 고문을 받기도 하고 15 년간 실업자 생활을 한 끝에 ‘엽관’의 방편으로 철저하게 실용적인 『군주론』을 메디치 가문의 수장에게 헌정한 경위가 찬찬히 설명된다.
책은 단순한 평전이나 연대기가 아니다. 삼성· 현대 등의 대기업 행태 고찰에서 시오노 나나미 비판까지 다룬 이 책은 마키아벨리즘을 온전히 소화한 역작으로 읽힌다. 그러기에 지은이의 주장처럼 인문학자, ‘약자의 수호천사’로서의 마키아벨리의 새로운 면모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저자가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이상주의와 정치현실은 함께 오랜 길을 가지 못하는 길동무와 같다”이지 싶다. 그러기에 마키아벨리의 입을 빌어 “부디 사보나롤라 같은 포퓰리스트들에게 속지 마시오. 그들이 당신들을 위해 쏟아 놓는 말들은 다 맞는 말이오. 그러나 그들도 언젠가는 당신들을 배신하고, 그 알량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당신들을 억누르게 될 것이오”라고 속삭일까.